잠자는 병사의 기도
---------------채규판
1
兵士여,
잠자는 우리들의 친구여.
하루 이틀의 휴식이 아니라
수백 일,
몇 천 년의 잠을 자면서
우리들의 게으름을 맞이해 주는
겨울이여.
아무것도 베풀지 못하면서
그 아무것도 잡지 못하면서
조용히 침몰하고 있는
우리들의 생활의 內皮에
언제나 달라붙어 있는
발갛고 파란 이끼 때문에
아침과,
아침이 보여주는 신선한 아름다움인데도
아프기만 하다.
사랑과 오만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음으로
얼마나 더 깊이 빠져들어가야 하는
늪인지
분간할 수 없음으로
兵士여,
네가 빌려준 날카로운 창을
가지고 있으면서
네가 빌려준 그 눈부신 추위를
거느리고 있으면서
그러나 아무것도
참으로 아무것도 만나지지 않는다.
아람드리 둥그나무를 끌어안고 서서
아람드리 둥그나무 밑으로
젖어들어 오는
구름의 내력을
하나씩 점검하면서
오랫동안 숨겨 지냈던
우리들의 속에서
타오르기만 하는 열화(熱火)를
비로소 내뿜으면서
영광을,
영광의 덫을 쓰고
챙기고
빛내야 하는데
친구여,
우리들의 잠 속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않는
저 흔들림의 꽃을 꺾어야 하는가.
아름다움과
눈물과
서러운 웃음과
슬픔과,
아주 중요한 주목과
반드시 싸움에 진 것들만 골라
소중하게
기원과도 같이 옷처럼 두르고
나타나는 兵士여,
우리들의 기대와
우리들의 끝없는 소망과
우리들의 마지막의 목표를
한꺼번에 성취하기 위하여
노래 부르고
소리치고
꿈꾸고,
그 비슷한 것들을
한꺼번에 불살라 버린
우리들의 친구여.
너는 소리가 들리는 쪽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을,
너는 우리들의 눈빛이 보이는 쪽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을,
느낌과
부딪침과
섬광처럼 쏟아져내리는
환희의 갈기 속에
의연한 몸짓으로 잠적해 있어야 하는 것을,
친구여,
젊고
희고
높기만 한
우리들의 兵士여.
약속한 일이 없으면서
무수한 약속을 빚어내는
우리들의 환상의 늪에
새가 날으고 있다.
무엇인가
새는 누구를 치장하기 위하여
솟구쳐 오르는
피덩인가.
침묵하면서
털어내야 하는 숙명을 끄덕이면서
우리들의 면전에
역사는 몇 바퀴의 회전으로
광망(光芒)을 뿌릴 것인가.
앞가슴을 풀어 헤치면서
속살이 묻어나는 것을
즐거워하면서
높이 떠 있는
해의 의표를 끄집어 내면서
兵士여,
너의 창의 머리맡에
나는 조용한 힘을 묻는다.
2
서라벌이라 했던가
비사벌이라 했던가,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
남쪽이라고 하던가
서쪽이라고 하던가
그 방향은 중요하지 않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잘 골라진 씨앗의 이름뿐인데
무엇이 있는가
준비하여 둔
우리들의 주머니 속에
무엇이 떨어져 내리고 있는가.
왜, 빈손이어야 하는가.
빈 손이 아니어야 하는 것을
알아버리고 마는가.
사랑하는 친구여.
너의 이름으로,
우리들의 이름으로
너와 우리의 공동의 이름으로
하나씩 모자를 벗겨가노니
산이 부서지고
바다가 끓어오르고
대개 그렇게 시작하는 것인가.
땀을 피처럼 흘리면서
죽어가는 친구여.
무엇이 가장 기려웠을까.
손떼에 치어 어물어물 쓰러져간
친구의 손에
왜 칼이 들려져 있는가.
염원보다는 기다리는 것이 좋아서
느낌보다는
끌어안는 것이 좋아서
해가 저무는데
까마귀처럼
까마귀 눈들처럼
비가 내릴것 같다.
3
더러는,
더러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가난한 손,
손은 왜 있는가.
이 파리한 손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기 위하여
분주한가.
우리는 이 손을
왜 가지고 있는가.
손은 무엇인가
부지런히 물어가면서
아무것도
그 아무것도 잡아내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통곡할 수밖에 없다.
반드시 흘려야 할 맑은 계류를
반드시 지켜보아야 할
우리들의 피의 맑음을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기려워하고
그럴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가지고 싶은
환상이여,
강이여.
쩍쩍 갈라지는 황토밭에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며
배여 오는 것,
그것은 강이 아니라
끈적끈적한 물체의 이동이다.
고운 피부는
일찌기 차압되어 버린 터에서
누구 한 사람도
조상하는 일이 없다.
누구 한 사람도
반기는 일이 없다.
왜, 우리는 포효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몸부림 치면서
맑고 깨끗한 것을
사랑해야 하는가.
백지처럼 벌렁 누워
천정을 올려다 보면
휑하니
하늘은 있다.
마주 소리치며
무너져 내리는 하늘이 있다.
그리고 말이 없는
하늘이다.
兵士여,
나의 어린 친구여.
우리가 너에게 약속할 수 없듯이
너는 우리에게 약속해야 한다.
저 굽이치면서
오열하면서
흐르고 있는 탁류의 기슭에
한 작은 눈물을
이슬처럼 뿌려야 한다.
거두어들이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마침내 다 빼앗겨 버린 채로
벌벌 떨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병사여,
우리들의 약속은
마음속 깊이 이어지는
신뢰의 높이처럼,
그래, 분명하게 만져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어느 게시판에선가 읽어본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여기다 옯겨왔습니다.
두루 돌려보고 싶어서요... |
연어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