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내린 들길.
걷다가 문득 돌아보면
내가 낸 발자국조차 신비롭다.
첫눈 밟듯 살아야 하리.
아름답든 추하든 지워진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희디흰 고요, 현재에 몰입해야 하리.
너무 높은 곳, 너무 먼 곳에 있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첫걸음 떼는 아이처럼 살아야 하리.
찬란한 여명, 붉게 타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가슴 설레는
첫사랑의 연인들처럼 그렇게 걸어야 하리.
저 강물 위에 내린 눈은 소리 없이 녹고
나뭇가지에 내린 눈은 소리없이 쌓인다.
과거도 미래도 눈 속에 파묻히고
하느님을 닮은
설인(雪人)들이 들길을 걸어가고 있다.
눈만 빼꼼한 설인들의 첫발걸음이 눈부시다.


-고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