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온 세상이 비분강개를 한다

아버지 아닌 사람이 없고
아들 아닌 사람이 없는데
모든 공범들은 꿀 먹은 벙어리

하나님 앞에 시침떼고 앉아
새벽이 오기 전 두 번 세 번 부정할 때

나는 할 말이 없어
애꿎은 엽차만 두 잔 마셨다

아버지 무덤 위에 뿌린 나의 눈물
진즉 마르고 없는데
아들의 손을 잡고 산소에 가는 날
미래의 내 무덤 앞에 서서
나는 잠깐 눈을 감는다

그날, 불효자식 유다가
은 열 냥에 아버지를 팔았을 때
그 피 흐르고 흘러
슬픈 요단강 위에
아벨의 피는 카인의 배신을 안고 통곡했느니라

1995년 3월 어느 날
나는 지구의 온화한 인간으로 살면서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을 위한 변명을
오늘의 첫 기도의 제목으로 떠올려 본다

아들아, 너의 가녀린 손에
떡 대신에 돌을 쥐어 줄
무슨 모진 마음이 있겠느냐

100년 전,
라스코리니코프의 손에 쥐어졌던
피 묻은 러시아의 도끼를 떠올리다가
나는 문득 내 손에 쥐어진
살기 흐르는 한 자루 도끼를 바라본다

아아, 나는 이 밤에
내가 나의 주인이 될 것인가
내가 나의 노예가 될 것인가

결단이 필요한 날
내 손에 쥐어진 도끼는
노예가 되려는
내 성한 두개의 팔다리를 잘라내다

아들아, 너의 손에 쥐어진 도끼를
진정 너는 어디에 쓰려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