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의 탄생.
또 하나 사람의 형태가 공기를 마시기 시작할 때
그건
분명 천지가 개벽할 일이지만
자연은 너무 도도하구나.

그렇게
우리는 참으로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왔다.
그러나
그토록 자연스럽게 온 줄도 모르고
그냥 왔다.

그저 아득한 형상으로 눈이 생기고
울음을 토하면서 내가 여기 왔노라고 한 것마저도
모르고 왔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이런 세상이 있는 줄은
전연 모르고 왔다.

우리가 저 세상으로 갈 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일들이 황망히 길고 짧을까.

우리가 이 세상에 나올 때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원인이 되어 태어난 줄은
더욱 모르고 왔다.

우리가 저 세상으로 갈 땐
무엇이 원인이 되어 그곳으로 갈까.

한 줌의 흙은 무엇이며
저곳은 어딘가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재가 되었을 때 코 앞에
엄마 아빠 사랑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우리가 저 세상으로 갈 때
그곳엔 또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엄마 아빠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지금부터 기다리고 있을까.

그러나 이 세상의 긴 목숨보다
그곳엔 더 가기 싫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왔듯이
아무것도 모르고
어차피 가야 할 바에야

사는 동안 하나도 빼지 말고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열심히 살자
기억에 담았다가
그곳에 다시 갖게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괘씸하도록 뚫어지게 보자.

그래서 그 중에
다행히 진실한 게 하나라도 있다면
그건 꼭
먹고서 살자.

거기에는 여기같이 복잡하지 말고
간단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