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것은 결코 그대만이 아니다.
아득히 높은 권좌 빛나는 부동의 별
머리 끊어 다짐한 맹세조차도
바다를 건너온 햇빛 앞에서
고요히 눈썹을 내린다.
어서 가, 어서 가라니까,
지나는 마을들은 삼베옷처럼 구겨지고
섬은 더 큰 목마름을 키우기 위하여
내리는 빗물조차
고일 틈을 주지 않는다.

2
울음을 모아 더 큰 지름작지를 쌓는다.
돌을 모아 더 높은 담을 쌓는다.
새를 엮어 더 튼튼한 지붕을 쌓는다.
그런 탑들은 무너짐으로써 완성될 것이다.

한림에서 애월로 가던 길에서
문득 부딪친 백색의 군다
살아 숨쉬는 것은 오직 참호 같은 눈보라뿐
눈은 모든 길을 지우고
허공을 지우고
시간마저 지워 갔다.

그리고
잠시 숨을 돌리듯
눈이 그친 애월의 저물녘
나는 홀로 보았다.
일체의 도말塗抹 위에
뚜렷이 태어나는 건
오직 내 발자국뿐
아니 이를 몰고 비상하는 겨울새의 날깨뿐

4
저녁종이 운다.
또 떠나야 한다.
나자렛 예수가 유숙할
안식의 지상은 아직 어디에도 없다.
인간으로 몸 낮춘 후
더욱 높이 흔들리는 고요한 울음
그 울음을 쫓아 우리는 또 어디도 가야 하는가.

낡은 성경책과 볼펜 하나
그리고 두꺼운 노트뿐인
장신구를 챙기고 서서

오늘은 제주항 멀리 흐느끼는
잿빛 구름을 본다.

엘리 엘리 나마사박다니
나마사박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