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이 가을처럼 펄럭인다. 바람의 책이 가득한 벌판이 자연의 도서관같이 숙연하다. 그렇게 가을 바람은 깊어만 간다. 그 깊은 호수로 가는 세 갈래 길에 과수원이 있다. 그 길에 나는 없다. 바람만이 그 길의 아름다운 무한을 안다. 그 과수원이 없었다면 호수로 가는 길은 멋쩍었을 것이다. 아직도 彼岸 같기만한 과수원. 사과와 배와 포도와 달빛의 물빛 도시. 어쨌든 과수원이 있었으므로 아침 점심 저녁으로 무료가 황금 사향 내음을 뿜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뭐라 해도 과수원에는 은빛 송어 같은 사람이 바람과 놀고 있다. 대지 위에 특혜받은 無처럼 바람만이 가을의 호수를 펄럭이게 한다. 세 갈래 길. 두 갈래 길. 한 갈래 길. 어느 길 끝이나 호수다.

그러나 호수에 가기 위해선 마음이 호수 같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