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육안으로 본 적이 없는
이 꽃이 지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을 처음 알았을 때 바-람-꽃-이-
라-바-람-꽃-이-라-음-음-중얼
거리며 원수 같았던 청춘의 어느
일요일을 걸어갔던 기억이 생생
하다. 스무 살 때였던가. 아까시
나무 꽃잎이 새떼처럼 쏟아져 망
막으로 쳐들어올 때 고개를 돌리
고 멍하니 적막을 쳐다본 기억
역시 생생하다. 식물에 관한 한
나는 꽃보다 잎에 매혹을 느끼는
사나이다. 11월 낙엽들이 천산만
엽으로 흩어질 때 어떤 행복한
예감 때문에 얼마나 전율했던가.
은행나무 잎사귀가 황금 바람을
대로 위에 뿌리고 있는 늦가을
어느 금요일 오후 휙! 고개를 돌
리면 어디선가 금방 바람꽃이 나
타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