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아 너는 내 첫사랑이
다. 나는 고립무원에 서서 이별
없는 정처인 너를 마중 온다. 룩
셈부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오는 길은 총알 택시를 타고 총
알처럼 너를 찾아가던 안개 낀
경춘 국도와 닮았다. 집중, 집중,
집중할 속도의 낙원이 절실하다.
빙하의 숨소리가 얼어붙는 그린
란드 호텔엔 국가의 꿈을 대신
꾸던 바람의 그 사납던 광기도
펄럭이지만 고립이 고립을 부르
고 단절이 단절을 부르는 안개
낀 길 위에서 지칠 줄 모르는 두
려움이 삶을 낳는다. 가을 바람
아 너는 내 첫번째 남편이다. 시
인의 눈으로 보면 천국도 천국
나름이지만 첫번째 여자가 아름
다웠는지는 색소폰을 부는 바람
의 연주자만이 안다. 푸르뎅뎅하
고 달콤쌉싸래한 안개, 시큼시큼
하고 새록새록 발효하는 이 공중
의 술을 마시면 대지를 덮는 바
다의 두께를 느끼리라. 가을 바
람아 너는 내 첫번째 아내다. 나
는 눅눅하고 축축한 침대 위에서
머나먼 고립인 너를 맞는다. 내
가 너를 찾아갔을 때 모래 기둥
위에는 얼마나 많은 바람이 흩어
져 모였을까. 얼마나 많은 느릅
나무들이 태양과 달의 심장을 움
켜쥐고 흐느끼고 있었을까. 프랑
크푸르트에서 룩셈부르크로 가
는 길은 비 오는 밤 가랑잎이 찾
아가는 춘천의 이미지다. 가을
바람아 너는 룩셈부르크다. 룩셈
부르크는 내가 쓰는 서정시다.
이러나저러나 삶은 내 앞에 있고
내 뒤는 50년 만에 한 번 비 오는
초원이다. 너를 찾아가는, 찾아
가기만 하는 왕국에서 나는 이미
고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