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를 거의 걸어 올라왔을 때 계단에 앉아 등 긁는 대막대기를 파는 사내가 보였다 음산한 눈빛과 질겅거리는 입술, 그가 나를 향해 뱉은 말이 껌처럼 얼굴에 달라붙었다 떼어내려고 할수록 더욱더 들러붙는 이 낯선 물컹거림, 한 여자의 불룩하게 드러난 가슴이 붉은 물감덩어리처럼 울컥 눈 속으로 쏟아져내리고 그녀와 팔짱을 끼고 걸어오던 중년 남자의 지팡이가 갑자기 뱀이 되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시멘트 바닥 위에 알을 까려는지 나비 몇마리가 낮게 낮게 파닥거리고 조화가 만발한 화단 곁으로 비루먹은 개들이 어슬렁거렸다 비틀거리며 지나가는 한 아이, 그 운동화 바닥에 코울타르처럼 남겨진 나비의 진액

누구일까,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역광장으로
정오의 햇빛을 반사시켜 쏘아보내고 있는 것은
개찰구를 향해 또박또박 걸어가던 나에게
그 확신이야말로 거대한 착란이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은
이 취기에 물든 화엄 속으로 나를 미끄러뜨린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