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들만 남아 있는 신전에 갔었지요.
가장 높은 기둥은 사람 키의 수백배는 되어 보였어요.
무엇이 기둥을 저토록 높이 올라가게 했을까요?
하늘에 귀기울이기 위해? 나무에게 말하기 위해?
다람쥐가 기둥 앞에서 오랫동안 귀를 쫑긋거리던데요.
기둥이 나무들과 주고받는 말을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요.
벽도 천장도 사라졌는데, 도시는 무너지고 언어는 흩어졌는데,
기둥들은 왜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걸까요?
기둥 속에 숨겨진 문을 찾아 나는 두리번거렸지요.
그 침묵의 궁륭으로 들어가는 입구 말이에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나는 어느새 기둥 속에 들어와 있었어요.
지하로 뻗은 기둥의 뿌리를 따라 아주 멀리 걸어갔지요.
이상은 것은 기둥 속에 다시 낮은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거예요.
기둥들 사이에는 사람들이 신문지를 덮고 누워 있었구요.
"나자로여, 일어나라!"
서울역 광장에서 걸어내려온 예언자는 그들을 향해 외쳤어요.
"어떤 새끼야, 잠도 못 자게 떠들어대는 놈이."
얼굴 없는 목소리가 들렸을 뿐,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차가운 기둥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지요.
무엇이 기둥을 이토록 깊이 뿌리내리게 했을까요?
사람들의 신음소리에 귀기울이기 위해? 그들을 재우기 위해?
기둥이 굽은 등짝들과 주고받는 말을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요.
신전의 다람쥐 대신 시궁쥐가 재빠르게 달아나고 있었고
나는 기둥 밖으로 나가기 위해 허둥거렸어요.
지하의 마천루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푸르기만 한데
기둥들은 왜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