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외손주

우리 딸뜰은 으레
자기 새끼들이
외할아버지 닮았다고 강조한다
눈매, 웃는 모습뿐만 아니라
하는 짓, 성격까지도 그렇단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서
위태롭게 살아온 아빠를 사랑했던 그들
아빠 존경하는 사내를 골라 연인을 삼은 그들은
아들을 낳아도 딸을 낳아도
태교를 하면서 나 닮기를 염원했단다

무엇을 보나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 아빠
아내는 아직도 불평을 감추기에 애쓰는데
돈도 명예도 그 무엇도 없는
이 땅의 가난한 교수, 시인인 아빠를
그들은 왜 아들 딸들에게 염원했을까

가난에 지지 않았고
불의에 무릎 꿇지 않았고
세속에 물들지 않았고
끝끝내 포기하지 않은
민족·민주·자주·통일의 염원을 안고
끙끙대며 시대의 비탈길로 포복해 온 삶
그 아빠의 꿈, 그 아빠의 슬픔을 사랑하기에
그들은 그들은 새끼들에게서 나를 염원하는 것일까

유달리 총기가 넘치는 외손주 놈
나를 닮은 그 눈동자 속에서
그 옛날 딸애도 보고 아들도 본다
닮은 것이 아니라 닮기를 바라는
고 녀석의 야무진 입술에서
어리광 피우던 딸들의 재롱을 본다

지금은 어엿한 주부
말썽 피우는 두 아이의 어머니
박봉에 시달리며 살아온
내 아내가 걸어온 고난의 길 되풀이

전세금, 병원비, 생활비, 유치원비……
결손으로 얼룩진 월말의 가계부엔
무슨 꿈 많은 청춘의 무지개도 뜨지 않고
제왕절개 수술로 하루 걸려 첫 애를 낳은 큰딸을 보면
고스란히 불려준 아빠의 가난이 안쓰러웁다

나를 닮은 아들 딸들아
나를 닮은 손자 손녀야
이제부터는 제발 나를 닮지 말아라
가난까지도 고통까지도
제발 이어받지 말아라

손자야, 손자야
이쁜 고추를 가진
나를 닮은 손자야


2.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