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숨겨진 곳에

반쯤 숨겨진 곳에 다리가 놓여 있다
들과 숲이 서로 밀고 당기다 놓아둔 곳
흐르다 말다 하는 물 옆에 돌들만 흩어져
어떤 놈은 몸을 반쯤 일으켜
몸을 뒤척이려다 만다.

늦가을 저녁
산들이 긴 그림자를 거두어들일 때
검불 몇 날리는 바람 속에
목소리 막 지우기 시작하는
적막한 새소리.


불타와 원효

불타가 말했다.
"저 소리를 듣다 보면
세상 온갖 풀과 인연이 마르고
다리 위를 건너기보다는
물 위를 건너고 싶어진다."
원효가 물었다.
"물이라도 건넌다면 그 또한 다리가 아니겠습니까?"
"면벽(面壁)과 면산천(面山川)의 차이지."


마음의 죽음

"마음의 죽음 앞에 서면
놋쇠와 꽹과리 소리내는 마음 앞에 서면
면벽이나 면산천이나 다 상처일세."
어슬어슬 저무는 빈 들녘을 보며 예수가 말했다.
"상처라면 고쳐야지요."
원효가 말했다.
"고칠 상처를 내놓아보게."
"시험에 들지 않겠습니다."
벼 그루터기들이 마지막으로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흐르다 멈춘 물이 먹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게 바로 마음의 죽음이지."


적막한 새소리

"십자가 위에 계실 때 해질 무렵 새소리가 들리던가?"
불타가 물었다.
"새들이 목소리를 낮추더군.
아마 어느 순간 새소리 아주 지워진 것을 모르고
계속 듣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예수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그게 바로 선생의 적요(寂寥)가 아니겠는가?"
"군데군데 끊긴 늦가을 물길이겠지."
잠시 후 예수가 혼잣말처럼 물었다.
"열반하실 때 건기(乾期)의 발제하(跋堤河)* 바람이
사라수(沙羅樹) 가죽 잎새들을 말리다 말다 했던가?"
한참 후 불타가 말했다.
"낯선 밤새들이 울었네."
원효는 귀를 기울였다.
바람 방향 바뀌며 잠투정하는 새들이 꾹꾹대는 소리,
들리다 말다.
다른 소리들이 걸음 멈추고 귀를 세우게 하는 소리.


원효 혼자

이윽고 원효 혼자 다리를 건넜다.
빈 들 어둠에 잠기고
불빛 하나 새의 숨소리 하나 새지 않고
가슴 높이에서 허연 가새쑥부쟁이 얼굴 몇
귀신처럼 흔들리고 있는 곳.

원효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불타가 입적한 사라쌍수(沙羅雙樹) 숲 옆으로 흐른 강, 쿠시나가라 성(城)밖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