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들은 다 전작 나갔다
거울 같은 까만 운동화로 바꿔 신고
몸매 가렸던 통치마는 발목 여민 헐렁바지로 갈아 입었다
머리엔 농군 아낙네들처럼 흰 수건을 둘렀다
그이들은 다 전작 나갔다
죽에 찬 하나
너무나도 간단명료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종이 울리자
세속 손님인 나를 식당에 오두마니 남겨두고
가볍게 뛰기도 하며 웃음 머금고
우리는 전작 나가야 돼. 점심때 돌아와. 한바퀴 둘러보고 있어.
그이들 속의 한 사람인 내 친구
흰 저고리팔을 걷어올리며 옆에 와 속삭였다
우리는 전작 나가야 돼…… 우리는 전작…… 우리……
갑자기 크고 넓어진 식당 안
서늘한 공간 바닥에서 천장까지
친구의 조그만 목소리의 말 맴돌았다
이상하다. 식당문을 경계로
이 안은 깊은 바닷속 검은 그늘이 꽉찼다
그이들 나 혼자 검은 그늘 속 힘겨이 헤엄치는 것도 모른 채
산비탈로 산비탈로 줄지어 갔다
노동도 없이 며칠의 밥을 축내는 세속 손님인 나는 버려졌다
산비탈의 여름은 나무들을 더 뜨거운 초록으로 일으키며 타올랐다
밭이랑길이 붉은 뱀처럼 휘돌며
식당 안의 내 쪽으로 미끄러져왔다간 홀연 되돌아 갔다
열린 식당의 커다란 유리문을 경계로
저 바깥 세상은 불이 한꺼번에 켜진 전광판과도 같았다
태양빛에 낱낱이 발현하는 움직이는 전광판 찬란했다
산비탈 하나를 다 차지한 깻잎밭에 쏟아진 그이들은
흰 저고리팔을 팔락이며 깻잎을 따기 시작했다
쉴새없이 이동하는 흰 머릿수건의 그이들
바구니들 수북해졌을 것이다
누르는 검은 그늘을 힘겨이 헤치며 식당문까지 다가온 나는
낱낱이 빛을 바꾸며 뿜어내는 산비탈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한 발 내디디면 나도 전작 나가
저 산비탈 하나의 빛의 입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
태양빛 아래 산마을은 숨죽인 듯 고요한데
식당 서늘한 유리문의 어둠과 빛의 경계에 손차양으로 기댄 나는
멀미 배를 탔을까 끝없이 흔들거렸따
내일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친구는 아까 식당에서처럼 다시 한번 속삭여줄까
이곳에 입교해…… 貞女 되어 살아……
검은 바닷속 그늘의 깊은 숨을
높이 오른 여름 골짝의 하늘에까지 닿으라 쉬며
나도 어느새 뜨거운 산비탈을 재재 올랐다
머릿수건도 두르지 않은 알머리로
밭이랑길 붉은 뱀 허리를 차며 깻잎밭에 들었다
팔 떨어지도록 얹었던 손차양을 내내 풀지 않아도
없는 옆구리의 바구니에
그이들 못지않게 깻잎이 수북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