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지 만파식적에 뚫린 구멍은 열이다
남자의 구멍은 아홉이고
여자의 구명은 열이다

둥근 바다에서 둥근 대나무 하나를
싣고 온 섬이 달려와 낮이면 섬도 대나무도
두 쪽으로 갈라지고 밤이면 다시 하나
둥근 섬이 되고 둥근 관이 된다
둘이 만나면 하나가 되지도
둘이 되지도 셋이 되지도 순간도 영원도 아닌,

둥근 관이 되는, 원융이 되는
빛나는 조화의 음악이 되는
모든 수는 열로 통한다
우주 굴신의 수 완성과 순환의 수
통일과 생성의 구멍
만파식적 마지막 구멍에서 울리는
청아한 청의 떨림이여

나는 아홉이고 너는 열이다
나는 밤낮 결핍에 시달리며 성난 채로 살아간다
사랑이, 그 변덕스런 사랑이 그걸 이루겠느냐
풀씨 하나에도 깃든
텅 빈 구멍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