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김영철 동지 영전에

천하를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으면
무엇에 유익하리요?

한 예수는 분명히
삶의 애착과
생명의 소중함을 역설했지만

여기 한 사나이는
무너진 도시를 안고
18년을 앓아온 긴 신음소리로
자신을 잃고 천하를 살린
피투성이 고독한 삶을 살았다

삶과 죽음은
영원과 찰나를 오가는
한 방울 이슬과
눈 깜짝할 사이
온몸을 관통한
총알 하나 스쳐간 자리

저 멀리
별똥별은 타오르다 스러지는데

여기 한 사나이는
무너진 도시
캄캄한 절망을 안고
18년을 앓으며 살았다
18년을 죽으며 모질게 살았다

생명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자유가 너무나 귀중하기에
단 한 발의 총탄에 죽을 수 없어
18년의 아픔을 으깨리며
18년의 통곡을 참아내며
당신은 죽음 속에서 삶을 지켰다
당신을 삶 속에서 죽음을 이겼다

불의와 폭력이 짓밟고 간
당신의 황폐한 가슴 속에
해마다 5월이 찾아와서
붉은 선혈을 흘릴 때
당신은 조금씩 죽어가며
광주의 죽음을 온몸으로 울었다

꽃도, 한 줄기 빛도 없이
어둠이 흐르는 정신병도 쇠창살에
18년을 죽어온 당신의 신음소리는
18년을 앓아온 광주의 고통이었다

이제 정신병동 어느 곳에서도
당신의 신음소리 멈췄어도
그 소리 우리의 가슴 속에
또 하나의 지울 수 없는
무거운 무덤으로 간직돼 있다

다시 단장한 망월동 묘역에도
페인트로 단장한 금남로 거리에도
그날의 핏자국 그날의 눈물
당신의 모습 당신의 신음소리 사라지고
뒤틀린 역사 다시 곤두박질 쳐도

당신이 앉았던 자리
당신이 싸웠던 자리
당신의 작은 관이 놓인 곳에서
당신의 외로운 육신이 썩는 곳에서

피 먹고 자란 자유의 나무는
당신의 아들 그 머리 위에 무성히
가지를 펼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
끝나지 않은 신음소리 흐를 것이다

오, 투사여! 열사여!
한 손엔 투사회보
한 손엔 총
18년을 싸우면서
18년의 어둠을 으깨리면서
18년을 앓아온 기나긴 죽음이여
오늘, 자유의 정수리에
피리엇을 찍는 장렬함이여

이 누리 푸르른 산하에
한 줌 흙으로 돌아간 육신
두 평 자리가 좁을지라도
기름진 역사의 가슴 속에
그 이름 길이길이 꽃피어나시라

무등과 더불어 빛고을 품속에
외로웠던 넋이여, 의로운 혼령이여,
편한 잠 누이시고 고이고이 명목하시라


* 故 김영철 동지는 80년 5·18 광주항쟁 당시 들불 야학팀으로 故 박관현 열사 등과 함께 투사회보를 제작, 시민군으로 투쟁하다 피체, 갖은 고문과 용공조작에 스스로 자결코자 철벽에 이마를 찧어 그로 인해 뇌가 상해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18년 3개월만에 운명. 98년 8월 29일 망월동 5·18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 분의 큰아들 동명 군이 조선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다. 이 조시는 도청 앞 영결식장에서 낭독된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