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뺏기고 번호로만 남은 사람들
그들이 우리 중에 가장 나은 자들이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들은 우리 중 가장 뜨거웠던 사람들
그래서 지금 차가운 감방에 산다

흑백의 수의에 갇혀 푸른 하늘을 꿈꾸는
그들이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한 자들이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들의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자
대낮의 햇살 아래 반갑게 손을 맞잡을
그날을 기다리는 간절한 눈빛들을 위해
그들이 우리의 어두운 과거가 아니라 빛나는 현재가 되기 위해
더불어 잔을 기울일 이 없어
사는 게 영 재미없는 나를 위해서

어서 나와라, 한꺼번에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멈추었던 生의 시계가 다시 뛰고*
세상을 향해 고개 들고 뚜벅뚜벅 걸어가거라


* 대구교소소에 수감중인 황인욱씨가 보내온 편지의 한구절인 "내 시꼐는 92년 9월 9일에서 멎어 있어요"를 조금 바꾸어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