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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도시를 지키던 십자군들이 물러난 뒤

밤보다 어두워진 하늘이 낯설어

똥개 한마리 꼬리를 내린 채 공원을 배회하고

비가 내린다

아파트 놀이터의 텅 빈 벤치 위에
불면의 밤을 건너온 주름진 눈꺼풀 위에
불 꺼진 神의 네온사인 위에
거대한 욕망의 공동묘지 위에
뜨거운 비가 내린다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영혼 하나가 벌떡,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허겁지겁 먹을 것을 찾는다
싸늘하게 식은 지상의 양식을.
심판의 그날은 아득한데
쓰라린 몽유(夢遊)의 위장에 언제 평화가 깃들 것인가

고요한, 고요한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