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세상에서 쫓겨났다.
한 번의 동의도 없이, 단 한 번의 양해도 없이
세상이 내다버린 두 다리가
굴곡진 길 위에서 휘청거릴 때
나는 행복하다 우연하게.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더
씹을 것 없는 삶처럼
불운을 이유로 행복하다.
둥근 지구나 둥근 양파
휘어버린 지평선 끝쯤에서 떠오르는
세상의 아침은 다 불운하기에 신선하다.
금속이 양광이 길 위로 꽂히고
남루한 날짜 위를 걸으며 누가 여행을
일탈이라 부르는가.
격발되지 않는 생을 절벽이라 부르는 자 누구인가.
손가락 구부려 방아쇠 걸어놓고 나는
조준선에 정렬된 채 또 나를 본다.
세상이 내다버린 생의 이력들이
끓어오르며 파랗게 청산가리 같은 날
낡은 악기에 기대어 노래하며 나는
가야 할 길이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