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떼가 지나간다
코끼리가 평원 위를 느리게 걸어간다
코끼리는 스피드를 숭배하지 않는다
게으름 때문이 아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자들이 스치고 간 그 모든 것들에게
코끼리의 눈은 생명의 잎사귀를 달아준다
산책가의 임무이다
쓸데없이 부지런한 욕망들이
코끼리의 영토를 망쳐놓았다
느림의 종착역, 상아 무덤은 그걸 알고 있다

코끼리 떼가 지나간다, 들어보라
나지막이 울리는 대평원의 심장 박동 소리를
대지는 코끼리의 발걸음을 느리게 음미한다
코끼리는 이 드넓은 대지에게
코끼리에 대해 사색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촐삭거리며 달려가버린 영혼들을
이 대지는 영원히 기억하지 못한다
길과, 길 위를 지나가는 자의 사색이란 결국
서로를 깊이 기억해주는 것 아닌가

코끼리 떼가 지나간다
지혜의 상아 무덤까지는 아직도 먼길이 남았다
부지런히 어디론가 달려가는 욕망이여.
그대가 본 것은 진정 무엇인가
오늘도 코끼리들은 긴 코를 구부려
이 세상에 거대한 물음표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