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여름인데도 겨울옷을 입고 땀이 흘러도 닦지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상처럼 앞만 보고 서 있는, 그 앞을 지나갈 땐 아이들도 길을 묻지 않는다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아가씨들은 도망치듯 핸드백을 몸에 붙이고, 그 앞에선 거지도 감히 수작을 걸지 못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둘만 모여도 줄을 맞춰 그들이 되는, 그토록 당당하고 그토록 과묵한 그들은 누구인가? 영화에 나올 때나 슬로모션으로 찍힐 뿐 우리는 결코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철망 안에서 밖으로 우리 몸을 샅샅이 훔쳐보고 침을 삼키든 말든 아무도 그 얼굴을 똑바로 보려 하지 않지만

이튿날 아침, 피묻은 보도블록 하나 흑백으로 편집돼 식탁에 오를 때 비로소 우리는 당당하게 고개 쳐들고 천천히 씹는다 끄덕인다 아하, 그들이 그들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