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흩날리는 이른 아침에 일본에서 다니러 온 처조카들과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발이 거칠어 우리가 먼저 눈사람이 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눈사람끼리 만든 말 못 하는 눈사람.

날이 개자 그 애들은 떠나갔다.
저녁 나절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그 눈사람이 사라져버렸다. 어디로 갔을까? 그 애들이 데려갔을까?

그날 밤에 꿈을 꾸었다.
빈 들판에는 나와 눈사람뿐이었다. 나를 둘러싼 그 눈사람들은 언젠가 내가 만든 것이었다. 어릴 적에 장독 위에 둔 꼬마 눈사람이, 속리산에서 만든 키 큰 눈사람이, 얼굴조차 잊은 내 눈사람들이 전혀 녹지 않은 채로 서 있었다. 어데 있다 왔을까? 왜 왔을까?

나는 문득 잠이 깨었다.
그때 보았다.
내 이부자리에 웬 눈사람 하나가 누워 요와 베개를 적시며 누워 녹고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