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작은 섬 산토리니에 갔었지
꿈속에서 본 듯한 적갈색 낭떠러지 위로
에게해 푸른 하늘과 청포도 천국이 펼쳐져 있었지
섬 가장 높은 언덕엔 하얀 집들과 교회,
종소리가 노을처럼 번져갈 무렵
나는 노새를 타고 몇 채의 보석 상점들을 지나
허름한 레코드 가게에 들렀어
실내는 심연에 잠긴 듯 아득한 물빛이었고
헬레나라는 검은 눈의 여인이 나를 맞았지
사방이 천길 절벽인 고도에도 음악이 있었다니
가지런히 꽂혀 있는 음악들 사이를 안개처럼 스며들던
그녀의 손은 문득 낡은 레코드 한 장을 꺼내들었어
이 땅 깊고 깊은 곳엔 아틀란티스가 묻혀 있지요
그 사라진 대륙의 노래를 들려드리죠
바닷물의 소용돌이처럼 은빛 레코드가 돌아가고
흡사 인어의 노래와도 같은 신비로운 선율이 흘러나왔어
묻혀버린 대륙의 꽃시절을 담은 그 선율은
내 발을 타고 올라와 온몸에 퍼져가기 시작했지
순간 나는 느꼈어, 내 육체의 지저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심령의 대륙이
아주 오랜 잠에서 천천히 깨어나는 것을,
나는 얼마나 많은 영혼의 지층을 지나 내 몸까지 왔을까
그날 난 포도주의 여신이 데려온 사라진 대륙의 취객들 틈에서
수만 개 청포도 알들의 파열음을 들으며
헬레나와 밤새도록 사랑을 나누었지
아침 종소리에 눈을 떴을 때, 나는 페리사 해변에 누워 있었고
내 몸의 천길 지층을 뚫고 솟았던 심령의 대륙은
온데 간데 없었어, 물론 그 코발트 빛 레코드 가게도
검은 눈의 헬레나도 찾을 수 없었지
난 지금도, 지나는 배를 유혹하는 인어의 노래를 듣곤 해
그때마다 내 육신의 지저 깊은 곳에 잠든 심령의 대륙이,
잊혀진 꽃시절의 볼케이노가 나직한 떨림을 전해오지
산토리니 산토리니, 참 멋진 일 같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