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사 약사전,
저 아래서는 스님 몇이
산비탈을 허물어 땅의 속살을 자루에 퍼담는다
고봉밥처럼 자루에 흰 구름을 푹푹 눌러 담는다
오후 내내 계속되는 울력
산새 한 마리 근처를 떠나지 않고
허공의 새파란 이파리를 물어뜯는다
하늘 구석구석마다 붉은 반점이 돋는다
옛날 옛적 물 속에 소금자루 감추듯
노을 가득 퍼 담은 자루를
차에 싣는 것을 보며
인적 끊긴 약사전 닫힌 문을 살며시 연다
오래 유폐되어 형색이 남루한 여래상
오백 년 만에 상면한
좌상(坐像)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코가 있어야 할 자리
반쯤 허물어진 언덕배기가 거기 있다

가까이서
산새 한 마리 오래 지저귄 까닭을 이제야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