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너희들을 찌르려 할 때
피뢰침은 우리 앞에 서 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칼을 품고 다닐 때에도
피뢰침은 자신의 칼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준다.

무엇을 찌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혹은 너희들을 막아내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받아들이기 위해서
피뢰침은 아름답게 자신을 들어올린다.

무엇이나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희들에게 순종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증오로써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우리가 서로를 찌르려 할 때
피뢰침은 높이 서서 우리를 보며 웃는다.

우리가 가슴마다 묻은 피를 닦아내는 동안
피뢰침의 그늘 아래로 별이 내려와 누워 있다.

ㅡ 주창윤,『옷걸이에 걸린 羊』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