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의 악기
김재진 | 448  

갈망이 나를 태운다.
다음 봄이 오기까지 꽃들은
뿌리를 젖게 하던 비를 그리워하겠지.
살구나무 사이로 결핍이 매달리고
세월이 지나갈 때 비로소 세월을 깨닫고
사랑이 지나갈 때 비로소 사랑을 후회한다.
멈추어 서서 계절은 비애를 노래하고
모든 연애가 연애로 위장된 비애인 것을
구두끈 적시던 빗물은 안다.
사막은 너무 많은 빗물을 못 견디고
침묵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 말을 못 견디고
그리움은 너무 긴 기다림을 견디지 못한다.
너무 많은 것은 화를 부르니
너무 많은 돈을 가진 졸부와
너무 많은 남자를 가진 여자와
너무 많이 고민하는 사람이 다르지 않다.
온종일 내린 비가 잎들의 근심을 무겁게 할 때
눅눅해진 허리 비틀며 악기는
갈망의 몸뚱이를 만지작거린다.
천 개의 늑골과 천 개의 꿈으로 이루어진 육체
음표의 갈비뼈를 문지르며 여름 나무는
비를 사모하고
사랑이 시들어갈 때 사랑을 후회하고
꿈이 시들어갈 때 다시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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