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변두리 공터나 청계천 육교에서
구충제, 만병통치약 등을 파는 약장수를 자주 보곤 했었지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약장수가 하나 있지, 잠파노를 닮은
그 사내는 약을 팔기 전 각종 묘기를 선보인 뒤
문득 노란 분필을 꺼내 칠판 앞에 세웠어
잠시 후면 이 분필에서 오색 광선이 발사돼
칠판에 큼직한 호랑이를 한 마리 그릴 겁니다
순진한 나는 눈이 번쩍 뜨일 기적의 순간을 보기 위해
꼬박 한나절을 쪼그려 앉아 있었지
구경꾼들은 약을 사들고 하나 둘 흩어져 가고
기다림에 지친 나는 약장수에게 언제쯤 호랑이가 나타날까요
물었지, 짐을 꾸리던 약장수는 심드렁하게
내일 또 와봐, 호랑이가 오려면 시간이 졸 걸리거덩
물론 그 후로도 잠파노 아저씨의 약은 오래 오래 팔려나갔을거야
어느 날 노란 분필이 광선을 쏘아 호랑이를 그릴 때까지
그런데, 그 까마득한 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왜일까
글쎄 삶이란 것도, 세상의 변두리에 쭈그려 앉은 내게
호랑이 그림을을 얘기하며 약을 팔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엉터리 구충제일지도 모르는 희망이라는 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