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것
유하 | 596  

노을이 드리우는 아파트 숲,
멀리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떠나간 친구들은 숲 밖에서 일하고
나는 쓴다
아이들은 아직 남아 있는 햇살의 은빛으로
나를 부른다
영준아, 이리 공을 던져
나는 그 은빛에게 아무것도 던질 수가 없다
바람 속, 마른 나뭇잎 같은 눈으로
갈 수 없는 곳을 행해 잔잔히 나부끼는 나를 바라볼 뿐,
나는 글러브 두 개를 가졌던 아이
그것 땜에 친구들은 나를 야구시합에 붙여주곤 했다
나는 깍두기였다
아이들은 가고 나는 쓴다
김칫국물 적셔진 몇 장의 통신표와 잿빛의 사춘기
역한 니코틴 냄새로 남아 있는 연애의 흔적들
어머니, 다음부턴 잘할게요
그리고 30대 후반의 어깨 굽은 사내가
황혼 속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
내 휴화산을 터뜨려줄 사랑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스런 편안함.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저녁의 텅 빈 놀이터
나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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