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 344  

밤이 깊은데 잠이 안 올 때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방 수술 후
뜨개질은 접어 버렸고
옷 짓는 일도 이제는
눈이 어두워
재봉틀 덮개를 씌운 지가 오래다
따라서 내가 입은 의복은
신선도를 잃게 되었는데
십 년, 십오 년 전에 지어 입은 옷들이라
하기는 의복 속에 들어갈 육신인들
아니 낡았다 어찌 말하리
책도 확대경 없이는 못 읽고
이렇게 되고 보니
내 육신 속의 능동성은
외친다 자꾸 외친다
일을 달라고
세상의 게으름뱅이들
놀고먹는 족속들
생각하라
육신이 녹슬고 마음이 녹슬고
폐물이 되어 간다는 것을
생명은 오로지 능동성의 활동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일은 보배다

밤은 깊어 가고
밤소리가 귀에 쟁쟁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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