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모습
박경리 | 379  

새집 처녀는
적삼 하나만 갈아입어도
서문안 고개가 환해진다
어머니 처녀 시절에
동네 사람들이 했다는 말을
막내 이모가 들려주곤 했다

어머니를
미인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 인물로
어찌 소박을 맞았을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를 미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목이 짧았고 키도 작았던 어머니는
내 마음에 드는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 윤곽이 너무 뚜렸했으며
쌍거플 진 큰 눈에
의미를 담은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고
그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 때도
왠지 나는 그것이 슬퍼 보이질 않았다
그만큼 어머니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시집올 때 가져온 것인지
세웠다 접었다 하는
백동 장석의 작은 거울 앞에서
동백기름을 발라 머리를 빗고
달비 하나 끼워서
검자주색 감댕기 감고 또 감아
쪽을 졌던 어머니
그러나 한 번도 셋째 이모 쪽머리같이
예쁘게 보이진 않았다
화장은 안 했으며
대개는 세수로 끝내었는데
살결은 희고 고왔다

한때 피륙 장사를 했던 어머니는
옷감에 대한 안목이 높았다
허드렛일 할 때의 옷 말고는
최상급의 천으로 옷을 지어 입었다
신새벽 절에 갈 때
바지며 단속곳도 모두 명주였으며
여름에는 철기날개 같은 모시옷
봄 가을에 법단 양단 호박단 같은 것
한겨울 아주 추울 때는 세루 옷을 입었다
덕택에 태평양전쟁 말기
물자가 동이 났을 때
나는 용감하게
어머니 세루치마에 가위질하여
양복을 지어 입었다

어머니가 입는 옷 색깔은
정해져 있었는데
흰색과 회색
어쩌다가 고동색 치마를 입기도 했지만
딱 한 번 어머니는
무색옷을 입은 적이 있었다
자주색 바탕에 흰무늬가 있는 스란치마와
하늘색 은조사 깨끼저고리였다
그 옷을 입을 때는 몹시 어색해 하곤 했다
아버지가
다소 어머니를 불쌍하게 여겼던 시기
내 기억으론 그때
한 번 무색옷을 입었던 것 같다

사연이 좀 긴데……
그러니까
나라가 망하고 외갓집도 쇠락했을 무렵
멀어진 친척과의 촌수를 잡아당겨
오가며 지내던
간창골 할아버지 댁과 조금 관련이 있다
늙어서도
들꽃같이 애잔한 향기를 간직한 할머니
미장부의 흔적과
기개가 도도했던 할아버지
그 댁엔 파초가 여러 그루 있었다
어머니는 간창골로 이사한 후
친정처럼 그 댁을 의지하고 살았다
나에게도 그 댁의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선비 집 생활의 높은 격조를
내 마음에 심어 준 곳이다
당시 동경 유학을 준비 중이던 그 댁 삼촌은
초등학교 육학년인 나를
공부도 지지리 못한 나를
상급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마치 새로운 돌파구라도 찾은 듯
그때부터 어머니는
삼촌의 의견을 수납하고
내 뒷바라지에 착수했다
그 하나가
따뜻한 도시락을 마련하여
내가 과외 공부를 하는
교실을 찾는 일이었다
일본인 여선생은
훌륭한 어머니라고 칭찬했고
어머니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러나 내가 말하려 하고
잊지 못하는 일은
회색 세루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온
어머니의 모습이다
비싼 천이어서 그랬는지
품을 넓게 잡아 지은 옷은
우정을 쓴 것 같기도 했고
추워서 그랬는지 부웅새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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