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김형경 | 430  

고추나무에 받침대를 세운다 비가 와야지 큰아버지
사촌형 없는 큰어머닌 오늘도 일손이 달린다
묘비 없는 뒷산 구덩이를 아카시아 뿌리 휘감아들 때
못 박아야지 살아남은 죄
손바닥에 아카시아 가시라도 박아야지
고추나무에 받침대를 세우며
혼자 남아 너무 오래 살았어 큰어머니 한숨 소리
자잘한 고추꽃 위로 낮게 깔리며 고추나무 흔들 때

삼십 년이 지나도 못 감은 눈 몇 개
밭 기슭에 누워 우리를 본다
참꽃 지고도 아직 칡꽃 피지 않은 이 강산 유월은
보릿고개 넘어 내리막길
보리밥과 풋고추에 뒤가 급한 내리막길
비탈에 기대어 잠든 조카들의 식곤증 속

마을마다 대순이 자란다 조카들의 잠을
쿡쿡 쑤시는 오래된 해골의 뼈마디
이마를 타고 내리는 그들의 희석된 피

저 대나무를 못 자라게 하자 자라면 꺾일 뿐
꺾이면 온몸 피 묻힐 뿐 네 피 내 피 없이
더위에 흐르는 네 땀 내 땀 없이 유월 가뭄에
쓰러지지 마라고 고추나무에 받침대를 세우면
이 강산 천지 벗어놓은 뱀 허물이 흐느적거린다
삼십 년이 지나도 못 감은 눈들 불을 켜고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지는 마라 속삭이는
아직도 대순이 자라는 이 강산 유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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