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젖는 벽을 위하여
김형경 | 430  

너를 사랑한다 네게 기대어 앉아
뼛속까지 스미는 습기를 사랑한다 햇살이
긴 손가락으로 바람을 부채질할 때 나는
그러나 울지 않았다 겉보리 껍질처럼 목에 걸리는
곡조의 노랫말 벽 속에 귀가 있다
내 노래를 듣고 있다

시인이 많은 나라 슬픈 노래 강물 흘러
넘치는 나라 의붓어미 홀아비
이복형제 많은 나라 쥐새끼가 씻나락보다
더더욱 많은 나라 밤이면 누구나 허기지는 나라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픈 나라

나는 언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저 빗줄기 타고 하늘로 오를 수 있다
금방망이 은방방이 두드려 저들을 외면할 수 있다
허리 저미는 노동으로 태양 향해 걷는 사람들
노동은 그러나 유희가 아니므로 밀물 때면
어김없이 하늘문을 등지고 돌아섰다

저들을 더 기다리게 하지는 않겠다 우리의 조상은
반달곰 불호랑이와 살던 수렵민족
벽의 습기는 구릿빛 근육을 따라 스미고
스며도 내 핏줄까지는 닿지 못한다
어깨동무 길동무 쉴 곳이 없다 곳간의 쥐
식탁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 거친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킨다 날아가는 백로 두루미 떼

이제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 눈이든 귀든
너를 열리라 흰 벽을 마주하고 피를 뽑는다
너를 사랑하는 모든 동물과 식물의 피
아직 뜨겁다 배다른 그러나 핏줄이 같은 형제여
우리는 빛나는 수렵민족의 후손 이제야 돌칼과
날도끼로 서로의 목을 베어줄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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