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 -수덕사 일기 1
김형경 | 439  

지등을 만들고 돌나물을 캐고 설거지를 하는 소녀야
휴양객이 되어 네 시중을 받는 썩은 영혼으로
나는 네 등 뒤의 어둠을 훔쳐보고 싶어 한다
사월을 기념하는 시는 쓸 명분도
진달래를 팔아먹을 높은 목소리도
이 땅을 폭파시킬 다이너마이트도 없으면서
한사코 네 어둠을 읽고 싶어 하는 내게

너는 사랑에 대해 말하는구나
네가 캐온 돌나물의 법칙과 그 속에 섞인
제비꽃 양지꽃 산제비붓꽃
작은 숨결의 큰 사랑에 대해
부처님 가운데 토막과 공양미 삼백 석
몸을 판다는 다른 개념에 대해 말하는 구나

파리 목숨도
파리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못하는 폭력에 대해
폭력이 눈치를 낳고 눈치가 비겁을 낳고
비겁이 소시민을 낳는 이 땅의 당당한 먹이사슬에 대해

나는 말하고 싶다
한 뿌리의 돌나물에도 목숨을 걸 수 있을 때
그런 때를 기다리며 살아간다고
그런데 너는

내 젖은 마음을 암자 벽에 기대 세우는구나
발치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칼날 주먹들을 가리키며
내게 사랑에 대해 말하는구나
저녁 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 따라 파블로프의 개
마음은 어느새 밥상 앞에 가서 앉고
이 몸을 팔아 보신탕이 남는다면
보신탕으로 파리 목숨이 연명된다면 어린 소녀야

나는 네 신발을 훔쳐 신고
몸을 팔러 영혼을 팔러 떠날 수도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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