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아니다 -수덕사 일기 2
김형경 | 450  

내가 산에 오르는 것은 바다를 굽어보고자 함이
아니다 내려다보이는 맞은편 산봉우리에서
애인의 젖무덤을 더듬는 사내
진득하게 괸 침을 보려 함이 아니다

내가 산에 오르는 것은
시시포스의 노동을 물려받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의 속셈과 너희 의중이 부딪쳐 먹구름 먹구름
거리에 비 내리고 오늘 산에 오르는 것은
주먹으로 바위를 치려 함이 아니다
바위를 굴려 산 밑 세상을 박살내려 함이 아니다

함께 살자고 가지 말라고
발목 잡는 것은 버린 애인이 아니다
그리움 폴폴 날리는 그 하얀 한숨 곁에
마음 눕히지 못하는 것은
더 큰 사랑이나 혁명 뭐 그런
명분 때문이 아니다

내가 버린 세상은 저 혼자 잘 흐르고
흘러흘러 바닷가에는 풍어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종내는 썩어나갈 역사의 내장을 잘 알면서도
끝끝내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뿐인 내 몫의 바위를 안고
피투성이 피투성이가 되어 함께 구르자는 것

아니다 아니다
실은 그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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