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김형경 | 459  

1 겨울에 베짱이는

날 일으켜줘 수렁에 빠져 달아나는
내 발목을 잡아줘 견고한 세상
그러나 내 발이 닿으면 한없는 수렁
개미야 진드기야 내 몸을 조금씩 떼어
땅속 네 집으로 실어 날라도 좋아 나는
썩어가는 나무둥치 몸이 가벼워지면
두 발로 하늘을 걸어 다닐래
땅 깊은 속 우리의 가난은 너무 어둡고
더듬이 끝에 등불 켜도 두더지야
땅 파먹는 네 슬픔 알고 있단다 그 깊은 속
나를 세워줘 네 슬픔 딛고
나는 서고 싶어


2 장마철 청개구리

집을 흔들며 바람이 불었지만 그날 아침
조심해야지 언제 어디서 해가 날지 모르는데
가죽만 남은 어머니 손에서 우산을 받아 쥐며
한 세월의 무게를 느꼈다 나는 손목시계를 풀어
어머니께 드렸다 기다리지 마세요 시곗바늘처럼
숫자판 위를 무심히 흘러가세요 하구에서 만날 땐
함께 용궁에 들더라도요 어머니 얼굴은 창문에 있었고
손바닥으로 유리를 문질렀지만 다시 구름은
집을 지우고 내 작은 키를 지우고


3 산속의 토끼야

노래할 거야 아무도 나를 말리지 마
우리의 화음이 서로 비껴 어디로 가든
가서는 영 돌아오지 않든 아무도
내 노래 방향과 위치를 간섭하지 마

나는 너를 나무둥치에 묶어놓는다
사랑은 흐르는 물이나 공기
들여다보면 네 가슴엔 물고기 혹은 소로시
새 한 마리 떠다니기도 하지만

나는 네 묶인 나무 주위에 원을 그린다
움직이지 마 사랑이란
네 항상 지니고 다니는 충치 괴롭겠지만
늘 지녀야 하는 네 몫의 고통

나는 사랑했다 그것이 흰쌀 몇 줌이나
털옷 아니라 해도 겨울날
우리 함께 나누던 허기와 화음
어울리지 못하는 노랫말이라 해도
나는 알고 있다 우리 어울려 어디로 가는가
어디만큼 가면 영 돌아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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