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 누워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이 밤
베갯머리에 와서 우는 귀뚜라미야
너의 목소리는 이 겨울 더욱 낭랑하구나.
귀뚜라미야
너와 함께 울어줄
그리운 내 노래는
목메어 감기고
눈물 또한 가물구나.
갈라진 벽틈으로 별을 몰고 와
우는 귀뚜라미야
우리들의 갈라진 조국의 벽엔
찬바람이 새어들고
저 하늘 별빛만
찬바람에 영롱하구나.
내 죄를 달라고
오, 내 이 더러운 죄를 달라고
너는 내 잠을 썰고
내 살과 뼈를 썰며
피를 말리는구나.
귀뚜라미야
몇 근 내 살과 뼈와 피가
어찌 너의 양식이 되겠느냐
내 조국 한반도는 동강나
우리들의 외로움과 슬픔과 그리움은
내 뼈에 닿아 아프고
내 절망의 뼈끝에서
살아나는 저 별빛 몇개가
어찌 너와 나의 양식이 되겠느냐.

어, 물소리가 들리느냐
아, 물소리가 들리느냐
가자
캄캄하게 언 밤
별빛을 따라 너와 함께 가자
너의 긴 촉수로 나를 인도하여
물소리 감긴 얼음장을 깨고
타는 목을 축이려 가자.
죄지어야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저 길고 모진
죄의 세월
황토 흙바람 속에
풀꽃같이 피었다가
흙담같이 무너졌던 사람들.
귀뚜라미야
우리들의 세월이
죽음으로 우리에게 건네준 생명이
저렇게 언 강 속
흐르는 물에 별빛으로 씻기는구나.
오,
너는
이 어둔 강물에서
나에게 배고파야 우는 울음주머니를
적셔서 주는구나.
끝내 이 세상을 이기고
저 세상을 해방시킬
이 가난의 강물에.

가자
강물을 그만 보고 가자
별빛을 따라
우리 등 뒤에 따라오는 물소리랑 가자.
이제 내 머리맡에 와서 울면
나는 너에게
내 양식이 줄어드는 기쁨으로
내 죄를 주마
그러면 너는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저 어둠 속에 갇힌
맑은 눈동자들의 창살에 가져다
어머니 얼굴처럼 달아라.

울어라 귀뚜라미야
저 어둔 새벽 산정에서
날 부르는
내 님의 낭랑한 목소리로
조국을 불러 깨워라.
저 산등성 새벽별처럼
나는 스러져 강물이 되고
이 어둔 강 굽이 부서져
새벽을 소리칠 그날까지
울어라
울어라
겨울 귀뚜라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