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기도
김재진 | 370  

벌레 한 마리 기어간다.
느리게 가는 저 벌레는
속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일까?
삶이 결코
속도에 의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벌레가 아는 만큼 나 또한 알고 있는 것일까?
남보다 빠른 속도로 왔던 것들이
남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는 공간에
느리게 기어서 생을 채우는 것들이
온몸 밀어 바닥이 된다.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시간 틈에서
씨줄과 날줄로 교직되는
비어 있는 저 공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한쪽에선 태어나고, 한쪽에선 사라지며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아니면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모든 것들이
공평하게 등 눕히는
구멍 난 저 바닥을 우주라고 부르는 것일까?
가쁜 호흡으로 오체투지하거나
적멸의 틈새 끼어 두 손 모으며
기도하는 그 순간 우린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어디로 연결되는 것일까 우리는?
세상 모든 생명들이 삶이라고 부르는
비릿한 저것들은 어디를 윤회하다 돌아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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