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일기
노향림 | 2062  

이름은 도원동이지만
애초부터 무릉도원은 없다.
용마루 고개 아래 나지막이 엎드린
철길 건널목 건너서 중세 고성처럼
서 있는 고지대 아파트

사람들보다 웬 낯선 시간이 먼저
오르다가 잠적해버린다.
나는 더욱 힘들게 올라가야 한다.
저 삼십삼천*까지 지붕 밑 다락방에
닿을 때까지

내가 사는 19층을 올려다본다.
베란다 우리창이 번쩍거리더니 무슨 음모처럼
이내 등돌리고 섰다. 어스름이 등을 치자
새들도 화들짝 놀란 듯 떠올라 사라진다.

사방 길이 한곳으로 불려 내리는
노인정 붉은 기왓장에 내려앉는
초겨울 추위 몇 점.
문 없는 내부로 말짱하게 갠 하늘이
몰래 숨어들어온다.

입주민 환영 플래카드 아래
발꿈치 들고 흔들거리던 수국, 부처꽃, 붓꽃들
이사꾼들에 짓밟혀 뭉개어졌다.
빈 터 뒤 휴게소가 저 스스로 뒤집어져
페허이다.
저 스스로 해체된 슬픔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욕계의 사천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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