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온 집안을 청소했소.
베큠도 하고, 창틀도 닦고,
당신이 일년 운세 떼어본다고 하다가
운세가 나쁘게 나오자
소파 밑으로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린
흑싸리 껍질도 찾아내고,
패니와 다임도 찾아내고,
내친김에 부엌에 들어가
밀려있는 설거지까지 했소.

항상 했던 일이지만
오늘따라 특히 땀을 흘리며
열심히 가사를 돌보았기에
그런 내 자신이 너무도 대견하여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이 떠오를 정도요.
그런데 부엌에서 나와보니
당신은 칭찬해줄 생각은 않고
딸들과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소.
나, 무지 서운했소.
그리고 배도 고팠소.
그래서 당신에게 밥 달라고 했더니,
나의 허기짐 따위엔 아랑곳도 하지 않고
계속 낄낄대며 TV만 보고 있었소.

난 할 수 없이 다시 부엌에 들어가
라면을 먹으려 물을 얹었소.
그러자 당신이 내게 물었소.
부엌에 들어가 뭐하느냐고.
그래서 라면 끓여 먹으렬고 한다고 했더니
끓이는 김에 자기 것도 끓이라고......

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님의 모습마저 떠올랐소.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소.
'아범아,
그 애비에 그 아들이지 뭘 그러냐?'
난 아버지께 대답했소.
아버지 그래도 전 행복합니다.
라면 먹을 때 김치는 집사람이 꺼내옵니다.
전요, 이 맛에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