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집
나희덕 | 249  

그 집이 폐허에 가까워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주인이 문과 창문을 모두 막아버리고 떠났지요

깨진 유리창 대신
벽돌과 함판과 스티로폼으로 메운 창문들,
지붕이 새기 시작하고
무성해진 풀이 문틈으로 삐져나오고
벽들이 차례대로 썩어갔습니다

마른 벽에 흰 곰팡이
젖은 벽에 검은 곰팡이가 피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자, 폐허 한 채가 완성되었군요

밤마다 쥐떼를 이끌고 길을 나서는 그 집
하지만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해
다음날 아침이면 다른 곳에서 발견되곤 하는 그 집

폐허가 걸어다니는 소리를
사람들은 잠결에 듣기도 하지요
폐허가 번져가는 걸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 집을 열고 들어갈 용기도 없답니다

푸석푸석한 눈동자,
더 이상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눈동자,
폐허는 바로 그 멀어버린 눈동자에서 시작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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