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
박경리 | 40  

씁쓸한 삶의 본질과는 상관치 않고
배고픈 생명들 팔자소관 내 알 바 아니라
연민 따위는 값싼 감상이거니
애달픈 여정이란 못난 놈의 넋두리
상처의 아픔 같은 것 느껴 보기나 했는가

그런데도
시인들이 너무 많다
머리띠 두른 운동가도 너무 많다
거룩하게 설교하는 성직자도 너무 많다
편리를 추구하는 발명가도 많고

많은 것을 예로 들자면
끝도 한도 없는 시절이지만
그중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
확고부동하게 옳다고 우기는 사람 참 많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늘어나게 되고
사람은 차츰 보잘것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구의 뭇 생명들이
부지기수
몰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땅도 죽이고 물도 죽이고 공기도 죽이고

연약한 생물의 하나인 사람
그 순환에는 다를 것이 없겠는데
진정 옳았다면 진작부터
세상은 낙원이 되었을 것 아닌가

옳다는 확신이 죽음을 부르고 있다
일본의 남경대학살이 그러했고
나치스의 가스실이 그러했고
스탈린의 숙청이 그러했고
중동의 불꽃은 모두 다
옳다는 확신 때문에 타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땅을 갈고 물과 대기를 정화하고
불사르어 몸 데우고 밥을 지어
대지에 입 맞추며
겸손하게 감사하는 儀式이야말로
옭고 그르고가 없는 본성의 세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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