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양식
이재무 | 17  

뜰안으로 홍엽 몇 장 톡톡,
차며 들어오는 바람 나뭇가지가
자지러지게 울고 밥사발 같은 달빛 속으로
꾸역꾸역 모여드는 얼굴들
마음 한쪽의 커튼 얼른 열렸다 닫힌다
지난 여름은 내게, 내가, 저지른 과오가
생애의 얼마나 큰 낭비며 멍에였던가를
지루한 장마와 심란한 폭풍 통해
일러주었다 집착의 계절에서 벗어났을 때
내 몸은 가마니 속 드나든 자루처럼
헐거워져 있었다 이제 그 텅 빈 자리에
나는 어제의 교만과 시기와 증오 대신
겸손과 자비와 용서의 양식을 담아야
하리. 나의 기도문은 나날이 길어져가리라
살면서, 우리는, 살기 위해, 죽어야 한다 거듭
나는 일은 얼마나 두렵고 벅찬 일인가
벌써 수목들 그렁그렁 붉은 눈물로
가을을 다 울고 나서 광목의 하늘
당겨, 마른 몸 맑게 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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