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기린에게
손택수 | 187  

옥탑방의 철제 계단은 여전히 삐꺽거리고 있는지, 여쭙니다
당신은 그 계단이 모딜리아니의 여인
목덜미를 닮았다고 하였지요
그 수척하고 해쓱한 목 끝의 옥탑방은
남하하는 철새들이 바다를 건너기 전
날개를 쉬어갈 수 있도록 일찌감치 불을 끈다고 하였습니다
싸우기 싫어서 산으로 간 고산족의 후예였을까요
어느 가을은 가지를 다 쳐버린 플라타너스에게
초원의 기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혹만 남은 가지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일어난 수피가 얼룩을 닮았기 때문만도 아니었어요
저는 기린이 올 줄을 모른다고 하였지만
우리에게 저마다 다른 울음의 형식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사이 저는 위장이 늘어나서 갈수록 목도 점점 굵어져갑니다
반성도 중독성이 되어 덕지덕지 살이 오르고 있습니다
포도의 낙엽들은 이미 마댓자루 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마치고,
거리마다 등뼈 으스러지는 소리로 탄식하던
몰락의 노래도 더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사이 지상은 낙엽의 소유권과 실용성을 발견했습니다
낙엽도 쓸모없이 배회할 틈을 잃고 말았습니다
기린이 사는 초원엔 벼락이 드물다고 했던 게 당신이었던가요
녹슨 철제 계단 밟는 소리가 낙엽 부서지는 소리 같던 거기
치켜올린 목이 사다리로 굳어진 옥탑방, 여쭙니다
철새와 함께 잠을 청하던 가을의 안부를
물방울 하나가 길디긴 물관부를 유성처럼 흘러가던 밤을
이름    비밀번호    

715 11월의 기린에게  187
714 창 구멍  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