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일요일 내내 어떤 시를 보내드릴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올려두었던 재미난 시를 골라보았습니다.
정재윤님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즐거운 시입니다.
시집제목도 접시꽃 당신이 아니라
'호박꽃 당신'입니다. ㅎㅎ

즐거운 마음으로 월요일 시작하세요. ^^


김치 - 정재윤

오늘 저녁
밥상 위에 올라있던 김치.
옆집 여자가 김장을 했다며
한 그릇 주었다지.
역시 김치는
담근 그날 먹어야 맛있어.
신 김치도 나름대로
맛이 있지만,
어려서 어머니 치마폭을 깔고 앉아
고춧가루 범벅의 어머니 손으로
한 움큼 입에 넣어주시면
너무 매워 혀를 호호 내밀면서도
계속 날름 날름 받아먹던
그 잊을 수 없던 맛.

당신 김장 김치 솜씨는
그야말로 일품이지.
다른 음식은
아예 만들지도 모르고
먹을 줄만 알면서도
김치는 어찌 그리 맛깔스럽게 담그는지…….
그런데 옆집 여자.
김치 솜씨가 당신 뺨 쳐.
정신없이 먹는 내게 당신은
"그렇게 맛았어요?"
하고 몇 번을 묻던지…….
난 허겁지겁 먹다가
"응, 당신 솜씨보다는
못하지만 맛있네." 하고
당신 기 살리는 대답을 했지.

다음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데
당신은 코골며 자고 있었소.
"나 다녀올께." 하는
인사말을 남겼지만
당신은 졸도한 사람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소.
그때 큰 애가 방으로 들어오며
조용조용 하는 말.
"엄마 깨우지 마세요.
어제 밤 아빠 주무신 다음에
김장 김치 담그셨어요.
더 추워지면 하려고 하셨는데
어제 아빠 때문에 충격받고
밤을 꼴딱 새셨다구요."
"아니 왜 나 때문에 충격 받아?"
"아빠 어제
밥 세 그룻 비우셨잖아요."
내가 세 그릇씩이나????
여보.
내 짧은 생각으로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다니……
계속해서 김치 맛있냐고 물었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난 그날 밤,
당신의 사랑과 자존심이 듬뿍 담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를 반찬으로
밥을 네 공기나 비웠소.
여보, 나……
사실은 네 공기에 도전하기 위해
점심부터 굶었다오. crackcr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