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장을 살피면서
문득 눈에 들어온 시집 제목..
누군가.. 제게 자장가를 불러주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나봅니다.^^

비가 와서 날이 시원합니다.
건강한 한 주 되세요.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 - 복거일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아직 담배 피우고
대보름엔 아이들이 마른 쇠똥을 불씨 삼아
논두렁을 태우던 시절
어느 두메산골에 가난한 내외가 살았습니다.
하루는……

자잘한 걱정거리들을
잠 속으로 끌고 들어간 아내여,
세상은 여전희 어지럽고
우리 가슴은 얼굴 없는 두려움에 떨리지.
궁색한 살림의 냄새를 감추느라
늘 조심스러운 아낙,
내 지금 그대를 위해 무엇을 하리.
그저 그대 꿈속에 포근히 눈이 내리라
이렇게 이불깃을 여미는 것 말고는.
하여 눈이 내리기를,
감나무 가지들 무심히 늘어진 골목길에
거기 걸어가는 소녀 위에
아직 파릇한 꿈들이 일렁이는 그 가슴에
눈이 포근히 덮이기를.
지난날의 아린 기억들까지
이제 솜이불 같은 눈으로 내리기를.
그리고 세월이 너그럽다면,
우리 함께 살아온 이 아파트촌
삭막한 풍경 위에도
기억들은 하얀 모습으로 사뿐히 내리기를.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랑이는 아직 곰방대를 물고
대보름이면 아이들은 마른 쇠똥을 불씨 삼아
논두렁을 태우던 시절
어느 두메산골에 가난한 내외가 살았습니다.
바람 스산한 어느 겨울 저녁
고단한 몸을 누인 아내 곁에서
세월이 무겁게 앉은 얼굴을 들여다보던 사내는
주름살이 깊어졌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사내의 눈길이 문득 깊어진 순간,
그는 보았습니다 그 주름살 속에서
그들이 함께 걸어온 길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셋집에서 셋집으로 이어진 그 굽고 고달픈 길은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랑이는 아직 담배 피우고
대보름엔 아이들이 마른 쇠똥을 불씨 삼아
논두렁을 태우던 시절
서울 변두리 어느 외진 아파트에……

셋집에서 셋집으로 이어진 길이
아스라한 옛일을 얘기하자,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자 길은 문득 몸을 떨면서
주름살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주름살이 잠시나마 가려지도록
사내는 기원했습니다
아내의 꿈속에 포근히 눈이 내리기를.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마치 무슨 큰 것이라도 걸린 것처럼.

마침 어느 너그러운 세월이 거기 있어
정말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쉰 줄에 들어선 아낙의 얼굴에
그녀이 고단한 꿈속에.
그 기억의 눈발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사내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메마른 자기 가슴에도 눈이 내리는 것을.
그리고 아득해진 가슴으로 들었습니다
자욱한 눈발이 들려주는 옛얘기를.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랑이는 아직 담배 피우고
대보름이면 아이들은 마른 쇠똥을 불씨 삼아
쥐불을 놓던 시절
서울 변두리의 어느 외진 아파트에
가난한 내외가 살았습니다. 하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