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린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내 시간 속으로
몇 개의 눈송이들이 뛰어든다.
이차선 도로 건너편
허스빌라와 능곡자동차 공업사 앞마당에 쌓인
타이어 더미에도 그 사이의 공터에 버려진
세 개의 무덤 위에도
무덤을 움켜쥔 마른 풀들의
웅크린 어깨 위에도 몇개의 눈송이들이 흩어지고,
공터와 잇닿은 언덕 위
아파트 신축 공사장의 기중기 모서리에도,
기중기가 떠받들고 있는 허공,
그 흐린 하늘의 중심을 조금씩 허물며
몇 개의 눈송이들이 몸을 날리고 있다.

물의 몸인 눈송이들은
차고 시린 허무의 길을 잘 아는지
허공, 그 속의 허방을 에두르며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고,
존재의 중량감을 덜어낸
가벼운 눈송이들은
지상의 길들을 지우고
그 위로 새 길을 만든다.

눈이 내린다,
하나의 풍경을 바꾸며 내리는
눈송이들이 만든 길 위에 내가 서 있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내가 서있고,
시계를 자꾸 들여다 보는
나의 이마 위로 하염없이 몸을 던지는
눈송이들의 흡뜬 눈들은 건너편 세 개의 무덤,
그 방치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박 미 영<시와 반시 2004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