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내가 있기에 그대가 있습니다.

나 또한 그대가 있기에 있습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 한 마리도

허공이 있기에 그 자리에 있습니다.

숲에 가서 숲을 보면

떨리는 물푸레나무 가지 하나도

그대가 있기에 거기 있습니다.

오솔길 따라 걷는 순간

그대 얼굴 사라지고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덩달아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길은 끊기고

숲을 물들이던 노을이

사라진 마음 불러 물들입니다.

그대에게 물든 나를 나는 끝내

지울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에 얹혀 있는 그대를 어디에도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평생을 업고 가야 하는 그대의 무게

시린 눈빛에 매여 나는

그대가 있기에 거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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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지




눈물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군요.

그렇지만 하늘도 갇혀 있어요.

음악이 흐르고

둥근 유리 밖으로 별들이 뜨지요.

병 속에 꽂힌 그 작은 잎 하나가

새로 피듯 싱싱하게 살아나고 있네요.

커피 대신 뭘 마실래요?

두 손을 감싸안는 따뜻함이 정겹군요.

꽃 이파리 하나 띄워놓은 홍차는 어떤가요?

브랜디라도 한 방울 섞을까요?

눈물에 섞인 염분처럼

슬픔에 기쁨을 섞어놓는 것도 좋지요.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거짓말을 믿나요?

그건 바보들이 하는 짓이예요.

슬픔은 나누어지지 않아요.나눌수있는 슬픔이란

너무 고상한 거죠.

슬픔은 그저 아무것에나 섞어두며

번질 때마다 두 손으로 감싸안을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감싸안다 보면 모든 게

새로워지진 않을까요?

아니,아니,그렇지는 않겠군요.

오래 꽂아두면 악취를 풍기는 꽃처럼

어쩌면 고약해질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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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어디에도 너는 있다.

커다랗게 숨을 쉬는 공기속에도

바람이 앉아 있는 풀잎 위에도

웃음 띤 표정으로 너는 있다.

네 맑은 눈이 따라다녀 나는

더 이상 죄 지을 수 없다.

더 이상 마음의 벽 쌓을 수 없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스스로 다짐해 둔 조그만 약속

상처받되 상처주진 말자는

물 위에 새겨놓은 약속

기쁨만이 사랑 아니듯

슬픔만이 세월 아니라면

남아 있는 날들 불러 네 안에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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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은밀한 서로를 더듬거나

서로의 상처를 핥고 있는

한 마리 여우처럼 우리는

길 위를 헤맵니다.

세상이 놓은 덫을 요령 있게 피하거나

킁킁거리며 서로를 탐색하는

한 마리 여우처럼 우리는

세사을 배웁나다.

어쩌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사랑이란 낱말 하나 꼬리 뒤로 감춘

사라진 여우처럼 우리는

슬픔에 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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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




썩어가는 모과에서 향기가 납니다.

자식들 다 키우고 홀로 된

어머니 품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사랑도 어디쯤 지나간 사랑에선

향기가 납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상처에도 향기가 있습니다.

수박 향 서늘한 은어회처럼

세월 속에 곰삭은 향기가 납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 알지 못한 향기도

저만치 떨어지면 느껴집니다.

멀리 갈수록 잘 보이는 산처럼

헤어져 있는 동안 그대 모습이

은은한 향기처럼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