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니리, 네 아라리는 갈수록 동어반복이잖아, 라고, 결국 당신의 맑은 눈은 내게 말하기로 되어 있고, 그, 그, 그렇지요? 라고, 침묵을 더듬는 마른 입술로 나는 당신에게 대답하기로 되어 있다. 그 그늘 없는 외길수순이 나는 두렵다. 벽으로 열리는 길의 아득함이여.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나의 의문부호를 머금은 대답이, 당신과 나의 그렇게 되어 있음이 벽의 형상을 하고 있는 하나의 문일 수는 없는 걸까? 그런 형식으로 다시 한번 우리가 가증스러운 삶의 주인이 되었을 때, 우리의 이 동시적인 주고받음이 그토록 끈질긴 당신과 나의 가증스러움에 형태를 부여해보려는 또 하나의 가증스러움일 수는 없는 걸까? 형태화되려는, 혹은 형태화되지 않으려는 가증스러움이 내뿜게 마련인 메슥메슥한 입덧 그 자체일 수도? 다시 한번, 보이지 않게 당신이 고개를 젓는다면...... 당신의 고요함이여! 언제나 휘어 있는 괴로움의 공간, 고이면서 맑아지는 슬픔의 시간 그 너머ㅡ아직 당겨지지 않은 방아쇠가 여린 통증처럼, 미열처럼, 오슬오슬한 한기처럼 우릴 데우고 식힌다. 그렇다, 냇가의 고운 모래들, 바닷가에 널려 있는 달걀귀신을 닮은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단지 허깨비 같은 세월을 껴안아보려는 절망적인 몸짓, 그 허기의 보기 민망한 반복 학습으로 잘디잘게 부서진 우리들의 선취(先取)한 모습들이라 해도, 여전히 우린 서로를 잘 모른다. 그러니 여전히 정처 없는 당신, 여전히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당신, 여전히 형태화되지 않으려는 당신이 여전히 나의 괴로움, 여전히 나의 슬픈 즐거움이다. 날이 갈수록 당신은 나의 동어반복이다. 왜 아니겠는가.